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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호
 

자연, 문화 그리고 집 (3-2)

10/22/2002 12:00:00 AM | 208.179.213.208 | 2004 읽음 | 마지막 변경 : nexcoreadmin, 10/5/2010 1:54:47 PM
사상의 변화와 문화 '사상(思想)'이라고 하는 거창한 단어를 들고 나오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생각이 변하면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 오며 그에 따라 집에도 변화가 오게된다. 사상의 대표적인 예는 종교이다. 앞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불교에서 유교 그리고 기독교 로의 변화는 대표적 종교시설인 절과 대성전 및 서원 그리고 교 회로의 변화를 가져 왔다. 종교의 변화로 인한 사회변화에 대하 여 몇 가지 예를 더 살펴보자 고려시대까지만 하여도 불교가 국교이니 만큼 도성내에 많은 절들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도첩제가 생기고 승려의 도성 안 출입이 금지되면서 불교는 산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것이 금세기에 들어오 면서 승려의 도성출입이 허락되자 다시 도심에 절이 세워지기 시 작한다. 이러한 변화가 생긴지가 한 세기가 되어감에도 아직 우 리의 머리 속에는 절이라는 것은 산중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 고 도심 내에 있는 절은 생소하게만 느껴지고 있으니 한 번 머 리 속에서 고착된 생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다. 어쨌든 앞서 말한 변화는 수많은 변화 중에서 일부 일뿐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왕은 고귀하다고 하는 생각하여 왕의 모습을 아 무나가 보아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생각 때문 에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일어나는 각종 행사를 그린 그림에서 왕 과 왕비를 그리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의 대통령은 다음 선거에 대비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얼굴을 드러내어 자신을 알리는 것 에 열심이다. 이러한 차이는 왕이 사는 곳과 대통령이 사는 곳에 서도 명확히 나타난다. 옛말의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는 단어만 큼이나 높은 담과 많은 전각들로 왕궁은 폐쇄성을 유지하고 있었 지만 지금의 청와대는 일반인의 관광코스가 되었으니 그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렇듯이 생각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 를 가져오고 그 결과 집을 포함한 생활에 연관된 모든 집기들까 지도 변화를 주게 되는 것이다. 사고의 변화가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예는 남녀유별 이다. 남녀가 구분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같은 집에서도 생 활하는 공간이 다르게 되고 또한 안채를 남들이 쉽게 들여다보 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평민에게까지 적 용되는 것은 아니다. 양반과 평민의 삶이 다르다는 생각 때문에 평민은 평민들만의 규범이 있게 되고, 그에 따른 집의 구조도 달 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상상력을 동원하여 조선시대 이전 에 사회로 올라가 보자 통일신라시대에는 우리 나라에 유교가 그 리 중요한 사상으로 대두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소개되는 정 도라고 하는 정도가 맞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도 과연 남녀유 별이니 하는 개념이 존재하였을까. 신라의 토기를 보면 남녀구별 을 유난히 강조하는 성리학적 개념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적나라하게 성기가 노출되어 있고 성교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 다. 국보 195호로 지정된 토우장식장경호(土偶裝飾長頸壺) 계림 로30호분출토품을 보면 여러 동물과 주악상과 함께 적나라한 성 교장면의 토우가 새겨져 있다. 부장품이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조 각을 그릇에 베풀어 놓은 사회에서 남녀의 엄격한 구별이 있었을 까. 분명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남녀의 엄격한 구분 은 유교에서 적자(嫡子)의 구분을 강조하다가 보니 나오는 생각 일 뿐이다. 지금의 사회에서는 어떠한가. 집에 자식이 하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떠할 것인가. 불교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불교가 도입된 이래로 불교의식이 나 또는 새로운 불교 형식이 도입되면서 건축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금당(지금의 대웅전)의 위상과 그에 따 른 본존불 위치의 변화이다. 삼국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까지만 하여도 금당에는 본존불만 모셔 놓고 일반인의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금당에는 일부 승려만이 들어갈 수 있었고 일반 적인 예배 공간은 아니었다고 한다. 금당은 부처를 모셔 놓은 장 소로서 여겨졌고 지금과 같은 예배행위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 다고 한다. 일반인들은 밖에 있는 탑을 대상으로 예배를 드렸다 고 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탑이 부처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 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탑은 불사리를 모시기 위하여 만 들어졌다. 따라서 탑은 곧 부처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다른 대상을 찾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예배의 방식 때 문에 금당에서의 본존불의 위치는 중앙에 위치하였다. 이러한 사 실은 유구를 찾아보면 확인할 수 있다.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 까지 절의 유구를 보면 불대좌의 위치가 중앙이었음을 알 수 있 다. 그리고 탑이 중요한 예배대상이었기 때문에 절에는 탑이 반 드시 있다. 영암사지 금당의 건물을 보면 거의 정중앙에 본존불 이 위치하고 주변으로 2중으로 기둥이 둘러져있다. 외부의 기둥 열과 본존불 주위의 기둥열 간의 간격이 그리 넓지 않아 두 사람 이 같이 서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구성으로는 그 안에 서 특별한 행사를 하기가 힘든 구조이다. 또한 신라시대나 고려 시대의 불상과 불대좌는 같이 조성되어 있다. 불대좌에도 매우 화려한 장식이 있어 불대좌도 맨 처음 제작 당시부터 불상과 함 께 조각의 대상으로 고려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장곡사철조약 사여래좌상(국보 제58호)을 보면 불상을 위하여 불대좌가 있는 것인지 불대좌를 위하여 불상이 있는 것인지를 구별하지 못할 정 도로 불대좌가 너무 아름답다. 또한 이 불상을 보면 네 귀퉁이 에 기둥을 설치하기 위한 구멍이 있어 불상이 닷집형태의 지붕 이 있는 구조에서 모셔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불대좌가 화 려한 것은 불대좌가 노출되어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는 것을 의식 하여 만든 때문이다. 이러한 불상의 형태는 불대좌 앞을 가리는 기구가 배치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금당의 기능을 확인하여 주는 증거인 것이다. 또한 금당 안에서 의 예배는 탑을 도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상을 돌면서 예배를 드 렸다고 한다. 이러한 예배의 방식 때문에 불상의 광배 뒷부분에 도 또 다른 불상이 새겨져 있는 예가 있다(만복사지석불입상:보 물 43호 ,경주남산미륵곡석불좌상:보물 136호). 이러한 예배의 방식은 유물과 유구를 확인하여 보면 최소한 고려시대까지 이어 져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회암사를 보면 탑이 없다. 고려시대 로 넘어 오면서 탑이 없는 절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예배의 방법과 대상이 변화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이 대상 이 탑에서 본존불로 바뀌고 예식의 방법도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 한다. 금당 내에 본존불을 친견할 수 있게 되면서 탑보다는 본존 불을 선호하게 되어 탑의 중요성이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에 절 에 탑을 만들지 않게 된 것이다. 탑 양식의 변천을 보면 탑의 중 요성이 변화하여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의 탑은 당당 하고 크기도 매우 크다. 그러나 통일 신라 말로 가면 탑의 크기 도 작아지고 장식성이 강하여 진다. 고려시대로 가면 다시 탑의 양식이 좀더 다양하여지고 크기가 커지기도 하지만 장식성과 불 교 도입 초기의 당당함은 되찾지 못한다. 이러한 탑 양식의 변화 는 탑에 대한 중요성의 변화를 보여 준다. 단적으로 크기가 변화 한다는 것은 탑에 대한 중요성이 적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 다. 이러한 예배방식의 변화의 모습은 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 다. 고려시대 말에 지어진 부석사 무량수전(1376년 고려 우왕 2 년)이나 조선조 초기(1430년:조선 세종 12년)에 지어진 무위사 극락전을 보면 수미단 위에 본존불이 올라앉는 형식을 갖추고 있 고 무량수전의 경우는 완전히 돌아앉아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있 고, 무위사 극락전의 경우 중앙에서 약간 뒤쪽으로 들어앉아 앞 쪽에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무량수전의 경우 예배 의식의 변화 때문에 본존불의 위치가 변화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공간을 확보하려는 의지는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변화 를 볼 때 최소한 고려시대 후기부터는 금당 안에서 공양을 위한 기구를 배설하는 의식이 집전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많은 사람 들이 금당 안으로 들어올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 한 변화는 조선조에 들어와 억불 정책으로 야외에서의 대규모의 예불행위가 줄어들고 법당 안에서의 예불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짐 에 따라 본존불의 위치는 점점 뒤로 물러앉게 되어 조선조 후기 의 절의 경우 대웅전의 거의 뒤쪽에 본존불이 위치하게 되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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